외국 곤충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곤충이 바로 헤라클레스지요.
세계 최대 기록이 178mm에 달하는 놀라운 크기에다 황색으로 번뜩이는 앞날개와 길게 솟은 뿔..
확실히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따 온 것이 확실히 이해가 가는 곤충이라
하겠습니다.
남아메리카 일대에 널리 분포하는 이 헤라클레스 왕장수풍뎅이(Dynastes hercules )는 지역별로
몇몇의 아종(subspecies)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아종의 구분이 현재 비교적 확실하게 정착된 것이
있는가 하면 정말 아종 수준으로 다른 개체군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변이 수준인데도 아종으로 발표된
것인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아종에 대해서 말해 보려 합니다.
이번에 포스팅해 볼 것은, 드넓은 남미 대륙 중에서 볼리비아 서부에 서식하고 있는 개체군이 해당되는
헤라클레스 모리시마 아종(ssp. morishimai)입니다. 일본의 신지 나가이(Nagai Shinji) 에 의해 2002년에
발표되었는데, 벌써 8년전의 일이 되었네요. 아종의 이름은 나가이에게 표본을 최초로 제공했던 일본인
모리시마 켄지(Kenji Morishima) 의 이름을 따 작명되었지요.
위쪽의 사진은 제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나가이가 2002년에 이 아종을 발표할 때 제시했었던 모리시마 아종이 지니는 특징적 형질은 9개인데,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모리시마 아종이 아종 수준의 분류군이라 하기엔 솔직히 좀 성급한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생각해 본 것은 두 가지인데,
첫째로, 신종이나 신아종의 기재 논문은 분류학자가 저명한 학술지에 투고를 하여, 다른 학자들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서 논문 내용에 수정과 수정을 거듭하여 최종적으로 심의에서 통과(=accept) 가
되었을 때에 학계에 발표되는 게 바로 정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최근 일본에서 기재되고 있는 여러 신종들이나 신아종들을 보면 이러한 심의 과정을 전부 생략
하고 또 학술지가 아닌, 곤충 잡지를 통해 자신이 작성한 원고를 투고해서 발표를 해 버리는 게 대부분
입니다. 모리시마 아종도 또한 일본의 곤충 잡지인 Gekken-Mushi를 통해 발표되었었지요. 즉 논문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엄격한 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로 발표부터 한 신종이나 신아종들을 학술적
으로 정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약간 위험성이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나가이가 내세운 모리시마 아종의 특징은 변이가 커서 애매모호할 수 있는 형질이 많기 때문
입니다. 대체 어떤 특징을 제시한 것인가 하면,
1) upper surface of body more strongly lustrous
몸의 위쪽 표면에 광택이 명백하게 더 많다 -> 이건 변이성이 클 뿐더러 이 자체가 좀 모호한 형질임
2) elytra yellowish ocherous with many black maculations
앞날개는 노란빛이 도는 황토색이며 검은색 반점이 많다 -> 앞날개 흑색 반점은 변이가 완전 심함
3) pubescence of body more yellowish than in the other subspecies
몸에 돋아나는 잔털이 다른 아종들보다 더 노르스름하다 -> 좀 모호한 형질이라고 생각됨
4) pubescence on frontal area of pronotum short and dense
전흉배판 앞쪽의 잔털은 짧고 매우 조밀하다 -> 이것도 타 아종과 확실하게 차이나는 형질은 아님
5) cephalic horn thick with five projections (including apical one) on upper surface
두각은 굵고 위쪽에 5개의 돌기(가장 끝쪽 1개 포함)가 있다 -> 두각 돌기의 수는 변이가 다소 있음
6) punctured area of pronotum narrow at base though wide at aide and at apex
전흉배판 기부에 점각이 난 부분이 좁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점각이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
이것은 어느 정도 맞는 형질이라 생각은 되지만(아래 사진), 변이성이 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됨
7) pronotal horn rather strongly curved downward, very robust in basal part, with a pair of lateral trianguler projections very robust and situated at near base
흉각은 꽤 강하게 아래쪽으로 휘었고 기부가 매우 굵으며, 흉각의 삼각형 돌기는 매우 굵으며
기부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 흉각의 휨이나 굵기는 변이가 커서, 형질로 내세우기에는 약간 위험함
8) tibiae and tarsi comparatively short
다리의 종아리마디, 발목마디가 상대적으로 짧다 -> 모리시마 아종이 발표될 당시 수컷은 113mm의
중소형이었으므로 이 내용은 아무래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됨. 몸의 크기와 다리 마디 길이의
비율(ratio)을 논문에 제시했던 것도 아님
9) lateral three spines of fore tibiae somewhat short
앞다리 종아리마디 측면의 돌기 3개가 다소 짧다 -> 다른 아종들의 돌기들과 비교를 해 보았을 때,
이 형질도 그다지 차이점을 느끼기가 어려움 (아래 사진).
< 타 아종에 비해서 돌기가 그리 짧다고 생각되지는 않음 >
즉 위의 9가지 형질들은 모리시마 아종 개체군들에 모두 해당이 되는 완벽한 것이 아니라, 나가이가
아종 발표를 할 당시에 그가 관찰했던 모식표본(113mm 수컷 개체)에 대한 설명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실제 유럽이나 멕시코의 갑충학자들의 경우, 나가이가 일본의 곤충 잡지를 통해 발표한 여러 사슴
벌레라든가 장수풍뎅이 종류의 신종과 신아종들이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모리시마 아종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볼리비아 서부를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는 개체군에 대해 명명된
종류입니다만, 그렇다면 이 곳에서 채집된 개체들이나 누대 사육을 했을 때 자손 개체들이 어느 정도는
특징이 동일하게 나와 주어야 이들이 진정한 아종이라 여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일본에
사육되고 있는 개체들을 종종 보면, 두각의 돌기 등에 있어서 너무 변이의 폭이 큽니다. 만약 사육자가
임의로 다른 아종 간 교배를 실시했다면 모를까, 순수 볼리비아의 헤라클레스가 정말 맞다면 아종으로
여겨지기엔 너무 변이폭이 커서 아종으로 성급히 진단하기보다는 최근 곤충분류학에서 새로운 테크닉
으로 대두된 DNA 염기서열 분석법 등을 통하여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제가 나가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종류를 발표할 때 잡지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식
으로 일본곤충학회 등의 심의를 통과하여 일본곤충학회지나 여타 다른 공신력이 있는 문헌을 통해서
발표를 한다면 더욱더 신빙성이 있고 확실히 신용할 수 있는 자료가 되겠지요.
일본의 신지 나가이는 그동안 아마추어 곤충학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제가 여기저기 찾아본 바로
일본 모 대학에 곤충학(농학)조교수로 최근 채용되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갑충에 대해서 전반적
으로 굉장히 열정적으로 연구를 하고 새로운 종/아종의 발표를 하고 있는 분이니만큼, 또 나가이에 의해
어떤 종류가 계속 발표가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기대도 됩니다. 더 솔직한 표현을 하자면 아마추어가
모여 곤충잡지 등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고, 자신의 글을 투고하고, 또 새로운 종을 기재도 하는
일본이 부럽기도 합니다. 이것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곤충 강국(?) 일본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엑박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