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 고운 고운산하늘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언제 어디서나 그 사람이 떠오릅니다.
얼굴은 발그레해지고 괜히 멍청이처럼 웃게 되고 심장은 콩닥거리고.
눈만 감아도 떠오르는 그런.
마찬가지로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눈만 감아도 떠오르는 곤충이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눈만 감아도 아른거리고, 심장은 두근거리고, 흥분되는 그런 곤충들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눈을 감으면 장수풍뎅이가
수액에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이 떠올랐고,
조금 지나 본격적으로 곤충을 시작하게 되면서는
멋조롱박딱정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눈감으면 아른거리는 녀석들을 보려고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
심지어 군에 복무하면서 외박을 나와(부대는 경기도 고양시, 위수지역은 서울)
강원도 깊은 산골로 일명 '쩜프'를 뛰어서
무박 2일 채집을 하고 부대에 복귀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쨋든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는 동안 만난
200종류가 넘는 녀석들중에
그야말로 오~~래된 에피소드를 가진 하늘소 중 하나가 바로 이 녀석입니다.
이 녀석을 처음 본 것은 1987년 출간된 국내 유일의 도감인
‘한반도산 천우과 갑충지’에서였습니다.
2009년 초 하늘소의 ㅎ자도 모르던 저는 하늘소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PDF파일로 그 도감을 받았습니다.
도판 사진부분은 JPG파일로 저장되어 있었는데
어느 부분을 보다가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제 눈이 꽂힌 곳은 바로 고운산하늘소의 사진이었습니다.
샛노란 몸색에 적절한 검정색 무늬의 배치.
곤충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일까?
그 이후로는 눈을 감기만 해도 고운산하늘소가 아른거렸죠.
그리고 2010년 4월 13일에 저는 입대를 했습니다.
1년간 곤충은 인터넷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고
내 안에서 고운산하늘소에 대한 열망은 점점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11년.
고운산하늘소 생각에 미쳐서 이런 일기를 쓰기에 이릅니다
[내것이 아닌 그대]
그리고 2011년 5월 말경 3박4일의 휴가를 나왔습니다.
곤충이 많아지는 5월말이라서 반사적으로 강원도 산골로 향했습니다.
같이 가신 분들이
"지금가면 어떤 곤충을 볼 수 있을까요 "
하는 소리에 정말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으로
"지금 가면 고운산하늘소가 가능성이 있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정확히 기억합니다. 사실 가능성이 '있긴 있는' 정도였죠....
1퍼센트도 가능성은 가능성이니까요...
그리고 첫날 우리는 강원도 평창군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날씨는 꽤 좋은 편이었지만 정말 벌레가 없었고
30분정도를 산을 오른 우리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쳐가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런데 이파리 보면 사과하늘소라도 있을거라고요"
말과 거의 동시에 내가 조그마한 하늘소를 한마리 잡았습니다.
그래도 뭐가 있긴 있구나...
그리고 3분이나 지났을까.
"어 고운산!"
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도
정말 1미터 옆에서.
뭐? 고운산?
이 순간이 고운산 하늘소의 실물을 처음 보았던 때입니다.
움직이는 고운산하늘소를 보고 내가슴은 정말 뛰다뛰다 터질것 같은 느낌이었습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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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도판 사진을 보고
뭐야 뭐가예쁘다는거야
라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제대로 된 사진 한장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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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산하늘소라니!
그것도 내가 지나간 자리에서!
하지만 이미 다른 분의 손에 들어갔고.....
내 것이 아닌 그대.
만져볼 수도,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워낙 잘 날아다니는 녀석이라 혹시 날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처음보는 녀석이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녀석이기에
같이 갔던 분에게 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사진에라도 담고 싶다.
내 손으로 만져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산신령님이 내 편이 아닌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주변에서 하루종일 앉아서 기다려 보았지만
역시는 역시 역시. 없어요!!ㅜㅜ
고운산하늘소의 털끝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의 복귀를 하게 됩니다.
반드시
반드시 만나고 말리라!
그리고 그해 말,
군대에서 말년을 보내던 저는 그야말로 고운산하늘소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다 찾아보았습니다.
러시아, 일본의 예전 자료들까지 모두 훑어보았죠.
전역만. 전역만 하자!!
그리고.....
어느새 병장이 되고...전역을 앞두게 됩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2012년이 되고
행복한 전역을 하고.
강원도 산골로 사진 촬영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최우선 도전과제는 역시 고운산하늘소.
버스를 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습다.
항상 분주하고 사람으로 저 같은 국내여행자들의 설렘을 채워주는 곳이죠.
중간에 휴게소에서 내려 하늘을 보니 날씨가 어마어마하게 좋습니다.
오늘 같은 날씨라면 기대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동서울터미널에서 3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
바로 짐을 풀고 사진기와 포충망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그대는 어디에...?]
가장 먼저 보인 녀석은 광대노린재.
함박꽃나무 잎사귀에 산란을 하고 있네요.
고약한 냄새가 나서 방구벌레라고도 불리는 노린재 종류지만
이 녀석처럼 예쁜 색을 가진 종류도 있습니다.
까치수영에는 호랑꽃무지들이 꿀을 빨고,
짝짓기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이자식들이..........
국도를 걷다보니 노란 꽃 위에 작은주홍부전나비가 보입니다.
나비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같이 갔던 동료가 나무 뿌리에서 곤충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저는 몸을 사리는 편이라서 저렇게까지는 못하겠더라구요. 목숨>>>>>>>>사진.
다음날은 일어났는데 날씨가 흐립니다.
시내로 나가서 먹을거라도 사와야겠다 싶어 냅다 버스에 올랐습니다.
시내버스 내부의 모습
그렇게 버스는 달리고 달려 양양시내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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